짧은창작동화 : 바다 속 책장

깊고 깊은 바닷속,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작은 책방이 하나 있었어요. 그 책방은 산호와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져 있었고, 문을 열면 파란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신비로운 공간이었지요. 책장은 바닷속 조류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렸고, 책을 펼치면 활자들이 물방울처럼 떠올랐다가 다시 제자리로 내려앉았어요. 이곳에서는 평범한 책이 아니라 잊혀진 이야기들이 숨 쉬고 있었어요.

어느 날,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 루나는 우연히 바닷가에서 반짝이는 조개껍데기를 발견했어요. 조개껍데기를 손에 쥐자, 갑자기 부드러운 파도가 그녀의 발목을 감싸며 속삭였어요.

"책이 널 부르고 있어. 바다 속 책방으로 가야 해."

루나는 깜짝 놀랐지만, 조개껍데기에서 퍼지는 따뜻한 기운을 느끼며 용기를 냈어요. 그녀가 조개껍데기를 귀에 가져가자, 마치 누군가 길을 안내하듯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어요. 루나는 조심스럽게 바닷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이 막히지 않았어요. 마치 물이 아니라 공기 속을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었지요.

루나가 발을 딛고 앞을 보니, 눈부신 빛으로 가득한 책방이 펼쳐졌어요. 벽에는 반짝이는 산호가 자라고, 문어 모양의 촛대가 책을 비추고 있었어요. 책방 한가운데에는 파도처럼 흔들리는 커다란 책상이 있었고, 그 뒤에는 조그마한 문어가 책장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오! 새로운 손님이군요!" 문어는 루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어요.
"나는 이 책방의 주인, 올드 문어라고 해요. 이곳은 잊혀진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랍니다."

루나는 두리번거리며 물었어요. "잊혀진 이야기들이요?"

올드 문어는 미소를 지으며 한 권의 책을 펼쳤어요. 그러자 책 속에서 빛이 피어나며 작은 인어 한 마리가 헤엄쳐 나왔어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요.

"난 예전에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이야기 속 인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졌지. 그래서 이곳에 머무르고 있어."

루나는 깜짝 놀랐어요. 책 속 이야기들이 정말 살아 숨 쉬고 있었다니! 올드 문어는 그녀에게 책을 건네며 말했어요.
"이 책방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하지만 사람들이 기억해 주지 않으면, 이 이야기들은 점점 희미해져 사라지고 말지. 루나, 네가 이 이야기들을 다시 기억해 줄 수 있을까?"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한 장 한 장 넘겼어요. 그러자 책 속에서 용감한 기사, 장난꾸러기 요정, 지혜로운 부엉이가 하나둘 튀어나와 그녀와 인사를 나눴어요.

그날 밤, 루나는 바닷속 책방에서 가장 오래된 책을 펼쳤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책은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어요. 루나는 올드 문어에게 물었어요.
"이 책은 왜 비어 있나요?"

올드 문어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어요.
"그 책은 네 이야기란다, 루나. 네가 이곳에서 겪은 일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이야기들이 담길 곳이지."

루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자신도 한 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니! 그녀는 조개껍데기를 꼭 쥐며 결심했어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잊혀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다고요.

다음 날, 루나는 바닷속 책방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다시금 잊었던 꿈과 상상력을 떠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바닷속 책방에도 점점 새로운 이야기들이 늘어갔답니다.

그 후로도 루나는 종종 바다 속 책방을 찾아가 올드 문어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곤 했어요. 그리고 그녀가 남긴 이야기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반짝이며 살아가게 되었답니다.

어쩌면, 당신도 언젠가 바다 속 책방을 찾아가게 될지도 몰라요. 조개껍데기가 반짝이는 날, 귀 기울여 보세요. 어쩌면 책이 당신을 부르고 있을지도요.